Page 113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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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 선문禪門의 화두로 유명한 ‘이 무엇인가?’(是甚麽?)는 붓다가 설하는 사념

             처 정지正知 행법의 선종적 계승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선종의 언어를 ‘언어

             적 명제의 정립에 대한 부정’을 거듭하는 반야공般若空‧중관中觀의 ‘이해 수행’으
             로 처리하거나, 선종의 중‧후기부터 선문 내에 자리 잡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이

             는 ‘신비주의 시선’에 의거하여 공안과 화두 참구법을 읽어버리면, 선문 언구 본
             래의 초점과 생명력을 놓치게 된다고 본다.
               선종의 선관은 붓다의 정학/선 수행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천명하고 있고, 이

             러한 새로운 관점의 철학적 기초는 흥미롭게도 원효와 『대승기신론』에서 확인된
             다. 그리고 원효와 『대승기신론』 그리고 선종의 새로운 선관은 그 인식론적 기초

             를 공히 유식唯識 통찰에서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유식 통찰의 의미와 초
             점을 정학/선 수행론에 적용시키는 내용은 남‧북전 전통에서 일반적으로 목격

             되는 유식학唯識學 이해나 선관禪觀과는 달라 보인다. 원효와 『대승기신론』 및 선
             종에서는 그 철학적 토대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이 목격된다. 그 공유 지대에 입각

             하여 이들은 선 수행의 의미와 초점, 방법론과 내용에 대한 관점을 새로운 길 위
             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이 새로운 선관은, 필자의 소견으로는, 붓다 선 법설의 핵

             심과 취지를 읽어내는데 기존의 선관보다 더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새로운 선관은 경시되거나 왜곡된 사마타 수행 전통을 제대로 복원시키려는

             노력으로도 볼 수 있다. 지금도 초기불교 탐구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는, 굴절된
             사마타 수행전통을 붓다의 법설에 상응하는 내용으로 복원시키는 일이라고 본다.

             니까야 자체의 의미 맥락을 자유롭게 탐구하면서, 주석서와 『청정도론』 및 아비담
             마 교학의 사마타 이해에 내재한 문제점들을 확인하는 동시에, 대승교학과 현대 선

             학에서 통용되는 선관도 과감하게 재성찰해야 그 복원의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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