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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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 가능하려면, ‘탐구자 자신의 이해와 관점’이 먼저 명료해져야 한다. 나아가
‘탐구자의 이해와 관점 및 성찰’의 향상을 위해서는 학인 스스로의 실존적 탐구
가 필요하다. 이 마지막 요청에 부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불학佛學을 탐
구하는 학인들로서는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교학적 탐구는 ‘가치평가적 태도’를 보여주는가? 대부분의 경우에 그
렇지 않아 보인다. 모든 유형의 교학에 대해 등가치等價値적으로 접근하여 각 교
학의 문헌‧언어‧이론에 대한 전문소양을 확보하는 것을 교학연구 방법론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치중립적 학문관이 수립된 것은 그리 오랜 일
이 아니다. 막스 베버 류類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처럼 가치중립을 요구하는 학
문관은 서구의 특수한 역사적 조건들의 산물이고, 이러한 학문관이 불교학을 장
악한 것도 그리 오래지 않은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인간‧세계‧
역사를 보던 서구 기독교 중심의 관점이 지닌 무지가 폭로되자 다양성과 다원성
을 수용하기 위한 가치중립의 태도가 요구되었고, 이러한 문화 상대주의적 개안
은 급기야 <다양한 것들은 나름대로 다 맞다. 가치평가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극
단적 상대주의’를 확산시켰다. 이러한 서구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 전개는 ‘가치
중립’ ‘다양성’ ‘상대주의’를 함께 묶는 학문관을 수립하여 인문학이나 종교학의
방법론을 장악하였고, 근대 이후 ‘학문으로서의 불교학’은 그 연장선에서 성립된
것이다. 현재의 ‘학문 불교학’이 가치중립을 마치 학문의 정도正道인 것처럼 여기
는 것은, 불교문화권의 역사적 전통에 대한 능동적 성찰의 자생적 산물이 아니
다. 불교문화권의 역사적‧학문적 맥락과는 전혀 이질적인 맥락에서 형성된 것
을 하등의 주체적 성찰과 평가도 없이 받아들여 몸에 걸친 것이다. 가치중립적
학문관은 불교문화권이나 동아시아 문화전통이 오랫동안 간수해 온 ‘문제해결
력을 중시하는 가치평가적 학문관’과는 단절된 학문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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