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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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보여준다. 따라서 ‘사용가치를 탐구하려는 성찰’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관
점’을 ‘현재어’에 담아내려는 ‘해석학적 능동성과 현재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
용가치를 탐구하려는 성찰’이 활기차게 작동할 때, 교학은 새로움을 추가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전통교학의 저 풍요로운 다양성은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현재의 ‘학문 불교학’은 전통교학에 갇혔을 뿐 아니라 전통교학
의 생명력도 상실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학문 방법론과 태도로는 더 이
상 붓다와의 새로운 만남이 불가능하다. 붓다의 통찰과 성취에 대해, 아직 놓치
고 있을지 모르는 혜안, 엉뚱하게 읽고 있는 해석학적 오독의 발견과 수정 가능
성, 붓다에 기대어 지속적으로 넓혀 가는 새로운 통찰과 전망 등이, 모두 묻혀 버
린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대로라면 불교학이 불교라는 고목古木을 고사목枯死
木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필자는 그 유력한 출구 하나가 ‘불교에 대한 철학적 읽기’라고 생각한다. 전통
교학이 ‘사용가치를 탐구하려는 성찰’로써 보여준 ‘개방성과 역동성 및 현재성’
을 계승하는 길, 붓다를 거듭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길, 붓다의 성취에 대한 해석
학적 오염과 일탈을 치유하는 길, 붓다와 손잡고 삶과 세상의 더 좋고 더 넓은 길
을 만들어 가는 길. - 이 모든 길에 들어서는 문이 ‘불교에 대한 철학적 읽기’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의미의 ‘불교에 대한 철학적 읽기’는 현재의 ‘학문
불교학’에서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고 본다. 교학사상을 다룬다고 해서 ‘불
교에 대한 철학적 읽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학사상에 대한 충분한 탐구와 이
해 없이는 철학적 읽기도 불가능하다.) 또 서구의 사변과 개념을 차용한다고 해서 ‘불교
에 대한 철학적 읽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칫 남의 다리 긁는 격이 된다. ‘불교
에 대한 철학적 읽기’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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