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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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을 지닌 한글과 한국어는, 명확하고 풍요로운 의미 생산력과 표현‧전달력을
             지니고 있어 철학적 사유를 전개하고 담아내기에 매우 수승한 언어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어의 주체들은 ‘불교에 대한 철학적 읽기’의 형성에 적합한 잠재력
             을 지니고 있다.



               철학적 읽기로서의 불학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도 이미 확립된 교학과 그것
             을 지탱하고 있는 해석학적 전제들에 집착하거나 지배받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학해學解와 신행信行의 제도와 현실을 장악

             하고 있는 교학적‧해석학적 관행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있으려면, 탐구하고 수
             용하지만 갇히지 않고 머물지 않는 ‘열린 유동성’, 만나면서도 헤어지는 ‘접속하

             되 거리두기’가 가능해야 한다. 사용가치를 염두에 두고 <기존 교학은 얼마나 타
             당하며 또 충분한가?>를 물으면서 마침내 <붓다의 법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

             가?>라는 질문에 ‘지금 여기’의 관심으로 대답해 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교학
             의 해석학적 토대 자체를 재음미‧재구축하려는 ‘철학적 정신’이 요청된다. ‘그

             어떤 전제에도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재성찰’을 철학적 탐구의 특징으로 간주한
             다면 말이다.

               교학 구성의 토대가 되는 관점이나 이해에 갇히지 않고 성찰하는 것은, 붓다
             의 권고에도 상응한다는 점에서 가히 ‘불교적’이다. 서구의 사변적 언어실험실

             도구와 작업내용들을 불교 언어에 이식하는 격의格義적 방식이 ‘불교에 대한 철
             학적 탐구’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 그 어디에도 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탐구하라
             는 붓다의 진리탐구 정신, 이해나 사유를 비롯한 모든 현상을 발생시킨 ‘조건들

             과 그 인과관계’를 ‘사실 그대로’ 탐구하라는 ‘연기緣起성찰의 방법론’에 의거한
             철학적 성찰은, 현행 불교학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철학적 불교학’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요긴한 대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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