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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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실체가 없음’(空)에 입각하여 펼친다. ‘상주‧불변하는 있음’(有)과 ‘허무의
없음’(無)은 ‘사실 그대로/있는 그대로’(yathābhūta, 如實)를 벗어난 것이며, 모든 유
형의 본질‧절대‧실체주의적 사유(常住論, 有論)와 허무주의적 사유(斷滅論, 無論)는
무지의 허구이고, 유‧무 양변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난 것이 중도인 ‘사실 그대
로/있는 그대로’라는 붓다 이래의 중도관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특히 유와
무 개념에 불변의 본질을 부여하는 어떤 유형의 사유도 유‧무 양변의 범주에 속하
는 본질주의 사유라고 비판하면서 중도를 드러내는 다양‧다층의 이론을 펼친다.
‘상주‧불변하면서 있다는 관점’(有見)과 ‘아무 것도 없다는 관점’(無見)은 모두 ‘동
일성을 유지하는 본질‧실체가 있다’는 본질‧실체론의 양면이라는 점을 통찰하
고 있기 때문이다. 원효는, 유有와 무無뿐 아니라 비유비무非有非無, 중도中道 등 그
어떤 개념에도 불변 본질을 부여하지 않아야 중도의 지평이 열린다는 통찰을 다
층적 이론과 논리를 통해 밝힌다. 그리하여 그는, 언어에 따라 사유와 이해를 수
립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언어를 수용하는 그 자리에서 모든 유형의 본질주의 유
혹을 떨쳐내고 중도 지평에 접속할 수 있게 하는 언어를 구사한다. 언어가 무지
치유의 통로가 되고, 언어와의 만남 자체가 무지 치유행위가 될 수 있는, 치유의
언어를 구사한다.
원효는 이 연기‧중도의 도리를 모든 유형의 대승교학 통찰과 결합시켜 다양
하고도 통섭通攝적인 이론을 펼친다. 특히 대승교학 가운데서도 유식唯識적 통찰
을 중심부에 놓고 중도의 도리를 다양한 맥락과 논의방식으로 전개한다. 이러한
원효의 태도는 『대승기신론』에 대한 연구에서 성취한 통찰에 기초하고 있다. 『대
승기신론』은 유식적 통찰을 토대로 삼아 여래장‧진여‧자성청정심‧진심‧일
심‧법신‧본각 등 대승교학에서 등장하는 긍정형 기호들에 담긴 혜안을 적극
수용하면서 ‘불변·독자의 본질/실체가 없음’(空)의 도리와 마음 지평을 결합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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