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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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와 낙이 양변이며, 피彼와 아我가 양변이고, 남자와 여자가 양변입니다.
                  모든 것이 양변으로 되어 있습니다. 양변이란 것은 서로 상극입니다. 상

                  극이어서 서로 어떠한 행동을 하게 되면 서로 투쟁하는 행동을 하게 됩
                  니다. 선과 악이 싸우고, 시와 비가 싸웁니다. 옳고 그른 것이 있기 때문

                  에 싸웁니다. 이쪽에서 볼 때는 저쪽이 그르고 저쪽에서 볼 때는 이쪽이
                  그르니, 시와 비가 싸우고 선과 악이 싸웁니다. 결국 양변의 세계라는 것

                  은 싸움의 세계입니다. 그럼 이런 싸움의 세계가 우리의 이상세계라는
                  목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이상세

                  계는 평화의 세계입니다. 양변이 있는 상극 세계에서는 평화라는 것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물과 불이 서로 통할 수 있겠으며, 시와 비가 서로 통

                  할 수 있겠습니까? 참다운 평화와 자유를 얻으려면 양변을 버려야 합니
                  다. 양극을 버리면 양쪽이 서로 비춥니다.(雙照二諦) 물과 불이 서로 통하고

                  시와 비가 통하며, 이런 모든 것이 서로 다 통하게 됩니다. 결국 차별 세
                  계란 상극 세계여서 서로 통하지 않고 싸움하는 세계이며, 서로 비추는

                  중도 세계는 서로 통하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둘이 아닌 법문’(不
                  二法門)이라 하니, 선과 악이 둘이 아니고 시와 비가 둘이 아니고 전부 둘

                  이 아닙니다. 불교의 근본에서는 서로 통합니다. 서로 통하려면 반드시
                  양변을 버려야 합니다.”     3)




                2) 원효의 중도관


               원효 역시 모든 사유와 통찰을 연기‧중도의 도리가 드러내는 ‘불변‧독자의




             3) 같은 책, 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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