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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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을 놓쳐’(失念) ‘나[라는 생각]’(我)과 ‘내 것[이라는 생각]’(我所)을 취하고
              ‘해롭거나 이로운 대상’(違順境)에 집착하여 ‘하늘에서 부는 바람’(天風)[처럼

              몰아치는 대상들]에 동요되어 ‘마음[의 경지]와 [세상의] 일이 각기 달라진다’(心
              事各異). [그런데] 만약 ‘[허공虛空‧금강金剛‧반야般若, 이] 세 가지 해탈’(三解脫)을

              익숙하게 닦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수행에서 나와’(出觀) 세상의 일
              과 마주하더라도 ‘이해수행의 힘’(觀勢)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어서 ‘[불

              변‧독자의 본질/실체로 차별된] 나와 남의 차이’(我他之相)를 취하지 않고 ‘좋거
              나 싫은 대상’(好惡之境)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하늘의 바람’(天風)

              [처럼 몰아치는 대상들]에 휘둘리지 않게 되고 [‘이해수행’(觀行)으로] 들어간다거
              나 [‘이해수행’(觀行)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모두 잊어버려 마음[의 경지]와 [세

              상의] 일이 별개의 것으로 나뉘지 않으니, 이와 같은 것을 ‘세 가지 [해탈]
              을 간직하는 작용’(存三之用)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해수행’(觀)을 처음

              으로 닦는 것은 ‘믿음을 세우는 열 가지 단계’(十信位)에서이고, ‘간직하는
              작용’(存用)이 이루어지는 것은 ‘[믿음이 이해로] 안착하는 열 가지 단계의 경

              지’(十住位)에서이다. 『본업경本業經』에서 ‘[믿음이 이해로] 안착하는 열 가지 단
              계의 경지’(十住位)[를 설명하는] 가운데 이 ‘이해수행’(觀[行])을 세운 것과 같은

              것이다. <안으로 수행함>(內行) 이하는 [보살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
              으로 ‘이해수행을 하는 양상’(觀相)을 밝힌 것이다. <안으로 수행함>(內行)
              은 ‘이해수행으로 들어가’(入觀) ‘[분별의 동요를] 그쳐 [사실 그대로] 이해하

              는 행위’(寂照行)이고, <밖으로 [중생을] 교화함>(外行)은 ‘이해수행에서 나

              와’(出觀) ‘중생을 교화하는 행위’(化物行)이다. 나오거나 들어가거나 [‘사
              실 그대로와 만나는 지평’(實際)인] 중도中道를 잃지 않기 때문에 <별개의 것

              으로 나뉘지 않는다>(不二)라고 말하였다. 『본업경本業經』에서 ‘[수행으로
              성취한 모든 것을 중생들에게] 돌리는 행위의 열 가지 단계’(十向; 十廻向)[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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