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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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것들이 다른 것과 구별되는 고유성/특징을 발생시키는 밀접하고도 특
          수한 상호 인과관계로 맺어진 현상을 ‘차이’라 불러보자. 이 무수한 차이들이 상

          호 의존하고 상호 작용하는 관계를 맺으며 잠시도 멈추지 않고 변해가는 ‘차이
          들의 역동적 관계의 장場’ - 지구 행성을 포함한 모든 우주의 현상계가 보여주는

          ‘스스로 그러한 면모’(自然性)라 하겠다. 모든 생명체의 감관능력이 마주하는 것은
          이 ‘구분되는 특징적 차이들’이다. 이 차이들과의 만남에서 해로운 것들과는 ‘회

          피의 부정 관계’를, 이로운 것들과는 ‘수용의 긍정 관계’를 선택하여 생존해 가는
          것이 생물을 관통하는 본능이다. 인간 역시 이 생명의 진화계열에서 등장한 존재

          이기에 이러한 ‘차이들과의 관계 구조’를 계승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진화의 어느 단계부터 차이들을 처리하는 방식과 능력에서 일
          종의 차원 도약을 이루어낸다. 다른 생물종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내용으로

          고도화시킨다. ‘언어를 통해 차이들을 처리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이 능력을 언
          어능력이라 불러보자. 언어능력을 확보함으로써 인간은 ‘차이들과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처리하는 고도의 능력자가 될 수 있었다. 언어 인간의 등장
          이다. 언어 인간은 감관능력(六根)이 마주하는 무수한 차이들을 언어라는 기호에

          담아 분류한 후 처리한다. 유사한 차이들을 임의로 한 다발로 묶어 하나의 언어
          기호에 담는 작업, 즉 개념화 작업을 통해 무수한 차이들을 재분류한 후 해로움

          은 피하고 이로움은 취할 수 있는 처리방식을 고안한다. 감관능력에 와 닿는 자
          연 그대로의 차이들로서는 적절한 대응에 어렵다. 혼란과 실수, 실패를 줄이

          기 위해서는 유사한 차이들을 묶어 비교작업을 적절하고 용이하게 할 필요가
          있다. 유사한 차이들을 임의로 묶어 언어라는 그릇에 담는 개념화 능력을 발현

          시킨 이유일 것이다. 유사한 차이들이 언어에 담겨 분류되자 차이들의 대비와
          비교가 분명해졌고, 이로 인해 기억의 장기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장기기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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