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P. 54
사‧욕구에 연루된 의식에 매이지 않고 그 이면으로 파고들면 마침내 가장 심층
에 존재하는 불변‧동일‧독자‧순‧절대‧만능의 궁극실재를 만날 수 있을 것
이라는 발상이고, 고행은 언어‧개념‧차이‧변화‧사유에 연루된 욕구를 거부
하다 보면 그 궁극실재를 체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으로 보인다. 이런 이해
를 전제로 한다면, 붓다는 구도 과정은 신비주의의 길을 갈 데까지 가 본 후 결별
하고 연기‧중도의 새로운 길에 눈뜸으로써 성공하는 과정이다. 니까야/아함에
서 육근수호 법문이 설해지는 곳에서 함께 설해지는 붓다 자신의 수행 회고는 이
러한 의미로 읽을 수 있다. 19)
붓다의 초전법륜에서 중도를 ‘쾌락 탐닉의 길과 고행의 길’을 양변으로 설하
면서 이 양변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도라고 설한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읽어 볼
수 있다. ‘언어에 수반하는 불변‧동일성 환각’은 신비주의 기획의 토대이고 선
정주의과 고행주의의 기반이지만, 일반 세인들의 욕망을 지배하는 것이기도 하
다. 살아있는 감관능력에서는 그 유지와 작용을 위해 ‘결핍 현상’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인간도 여타의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감관능력의 물리적 유지를 위한
‘일차적‧본능적 결핍 현상’이 발생한다. 동시에 인간에게는, 언어능력에 의거하
여 차이들을 비교‧판단‧평가‧이해하는 사유의 능력 때문에, 여타 생물과는
그 수준과 내용이 다른 다채로운 ‘이차적‧정신적 결핍 현상’이 발생한다. 그리
고 ‘일차적‧본능적 결핍 현상’이든 ‘이차적‧정신적 결핍 현상’이든, 결핍을 충
20)
족시키려는 현상이 욕망/욕구 이며, 결핍이 해소된 상태를 만족‧행복이라 부
19) 필자의 논문 「고타마 싯닷타는 어떻게 붓다가 되었나?」(『철학논총』88, 새한철학회, 2017)는 이와 관련한 필자의 소
견이다.
20) ‘일차적‧본능적 결핍 현상’을 충족하려는 현상은 욕망, ‘이차적‧정신적 결핍 현상’을 채우려는 현상은 욕구
라고 구분해 보았는데, 서술의 편의상 욕구나 욕망이라는 용어로 두 가지를 모두 지칭하기도 했다.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