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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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제를 원점에서 해체한다. 불변‧동일‧독자‧순수‧절대‧만능의 궁
극실재로 향하는 길 자체를 폐쇄하고 전혀 새로운 길을 연다. 필자가 보
기에, 그 길에 들어서는 문은 대략 다음과 같은 관점들이 열쇠가 된다.
- <삶의 구원과 진리에 관한 모든 주장은 반드시 경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현상 속에 불변‧동일‧독자의 실체나 본질은 원
래 없고, 그런 현상들을 산출하고 관장하는 전능의 불변 실재도 없다.>
<모든 현상은 가변적이고 관계적이며 조건발생적이다.> <인간의 모든
경험은 차이(nimitta, 相)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
떤 수준의 깨달음과 성취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의 발생조건인 차
이 현상들’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또 그 관계에서 발생해야 한
다.> <구도와 수행이란 것은 ‘차이 현상들과의 새로운 관계방식’에 눈
떠 ‘새롭게 관계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과정이다.> <개인과 사회의 모
든 수준의 이로움도 가변적‧관계적‧조건발생적인 차이 현상들과의
접속을 유지한 채 추구해야 하고, 그 차이 현상과의 관계에서 구현해야
한다.> <가변적‧관계적‧조건발생적인 차이(nimitta, 相)들과의 접속을
끊어버리려는 초월의 유혹, 모든 변화와 차이 및 관계 의존성이 제거된
‘불변‧동일‧독자의 실재나 지대’를 설정하는 것은, 모든 무지와 기만
및 폭력의 원천이다.>” 21)
그러나 그의 후학들 가운데는 이러한 붓다의 길을 잘못 이해한 경우가 많아 보
인다. 예컨대 변화(無常)의 법설에 대해서는 <변화하는 것들은 허망하니 그런 것
21) 「차이(相)들의 ‘상호 개방’(通)과 ‘상호 수용’(攝) - 『금강삼매경론』과 차이 통섭의 철학: 원효와 붓다의 대화(Ⅱ)」(『금
강삼매경론』 해제, 세창출판사, 2020), 36-37. 「깨달음은 ‘순수실재와의 만남’인가, ‘현상과 만나는 새로운 지평의 열림’
인가?」(『철학논총』95, 새한철학회, 2019)도 이러한 관점에 관한 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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