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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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다. 문제는 인간의 경우, 욕망이든 욕구이든 모두 ‘언어에 수반하는 불변‧동
             일성 환각’에 물들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욕망/욕구는 ‘결핍을 해

             소하고 충족시키려는 충동’이 불변성‧동일성의 확보를 지향하고 있다. 이성異
             性을 향한 성애性愛의 애욕이든 소유 충동의 탐욕이든, 결핍을 충족시켜 주는 대

             상이 불변‧동일의 상태로 유지되기를 갈망한다. 욕구/욕망과 본질주의가 결합
             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중도 법설이 설하는 양변兩邊의 두 유형인 ‘쾌락

             탐닉과 고행’ 및 ‘유‧무 양변’은 모두 불변‧동일성을 지닌 본질·실재를 설정하
             는 본질주의의 표현이다. 그럴진대 붓다는 중도 법문을 듣는 사람들의 특성에 따

             라 두 유형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붓다는 우파니샤드 전통에 기초한 인도 신비주의의 기획을 원천에서 해체하

             고 새로운 길을 열었다. 우파니샤드 계열의 인도 전통사유와 비교할 때, 붓다는
             근원적으로 반反인도적 통찰을 펼친 분이다. 그의 어떤 법설에서도 신비주의가

             설정하는 실재를 인정하거나 수용하는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붓다의 법설은,
             경험세계 현상들(차이, nimitta) 속에서 그들과의 접속을 유지한 채 문제를 해결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현상들에 대해 변화(無常)와 ‘불변‧독자의 본질/실체의 부
             재’(無我) 및 ‘조건인과적 발생’(緣起)에 관한 통찰을 설하고 있다. 붓다의 법설, 그
             연기‧중도의 길은, ‘언어‧개념‧차이‧사유‧욕구‧변화‧관계와의 접속을

             끊지 않으면서도 이들로부터의 오염‧불안‧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이 거론한 바 있다.



                  “붓다 이전, 아트만/브라흐만을 에워싼 인도의 전통사유는, 유일‧절
                  대‧만능의 창조신을 옹립하는 서양의 신앙 사유와 더불어, 무의미한 명

                  제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먹힐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의 전형이고
                  아직까지 위력을 잃지 않는 성공 사례이다. 그런데 붓다는 이 무의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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