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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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동일의 본질을 지닌 실재’(실체‧본체)가 있다고 설한 적이 없다. 그런 동
일성을 지닌 존재나 현상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불변의 정신이
나 아트만‧브라흐만은 인정하지 않고, 그 어떤 불변‧동일의 궁극실재를 체득
해야 영원불변하는 깨달음‧해탈‧열반이 성취된다고 설한 적도 없다. 붓다가
설하는 ‘풀려남의 자유’(해탈)와 ‘동요가 그친 평안’(열반)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
계 속에서 변화하는 차이들’과의 관계에서 구현된다. 그리고 그 차이들은 예외
없이 언어에 연루되어 있다. 그런 차이(相)들에 대한 관점과 이해, 그런 차이들과
의 관계방식 및 관계능력이, 무지와 번뇌, 속박과 풀려남, 오염의 동요와 청정의
평안을 발생시키는 조건들이다. 육근수호六根守護 법설은 이 점을 명백하고 정확
하게 알려준다.
깨달음‧해탈‧열반 등 붓다의 법설이 지향하는 긍정 가치들은 처음부터 끝
까지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차이들과의 관계’에서 구현되며, 따라서 ‘차이들에
대한 이해와 관계방식 및 관계능력’이 모든 향상수행의 목표이자 과정이다. ‘관
계 속에서 변화하는 차이 현상’(相)에 대한 붓다 법설의 의미를 놓쳐 버리면 붓다
법설에 대한 이해가 자칫 엉뚱한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 엉뚱한 길에서의 혼란
과 방황을 먹고 자라는 독버섯이 있다.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차이 현상’(相)과는
절연絶緣하고 ‘차이 현상 이면이나 그 너머에 완전한 궁극실재를 설정하는 신비
주의 시선들’이 그것이다. 이런 시선들은 ‘변화하는 차이 현상’에 대한 불안함을
떨쳐낼 수 있는 ‘불변의 완전한 실재’에 대한 이론과 그것을 체득할 수 있다는 수
행론을 교학의 이름으로 수립한다. 아니면 붓다의 법설이나 기존의 교학을 그런
시선으로 해석한다. 다양한 유형의 본체‧현상론은 그 대표적 사례인데, 『대승기
신론』이나 원효 언어에 대한 이해에서도 빈번하게 목격된다. 성철이 구사하는 ‘불
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용어도 그러한 신비주의적 궁극실재에 대한 표현으로 간주
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성철 자신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용어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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