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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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 매여 살지 말고 허망하지 않은 불변의 실재를 구하라는 뜻이다>라고 읽고,
             ‘불변‧독자의 본질/실체의 부재’(無我)에 대해서는 <무상한 가짜 자아를 버리고

             참 자아인 불변‧절대의 자아를 구하라는 뜻이다>라고 읽으며, ‘조건인과적 발
             생’(緣起)에 대해서는 <인과법칙에 매이는 것은 모두 윤회이니, 인과법칙에 매이

             지 않는 절대 실재를 체득하여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라는 뜻이다>라고 읽는 시
             선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우파니샤드 전통에 기초한 인도 신비주

             의의 시선과 겹친다. 붓다가 비판하고 제시한 전혀 새로운 길을 걷겠다면서도,
             실제로는 붓다의 길을 다시 인도 신비주의의 길로 포장해 버리는 일들이 불교 내

             부에서 발생한 것이다.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와 관련된 성찰을 인식론적‧
             논리학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불교인식논리학에서는 ‘사실 그대로’를 ‘차이 경험

             이나 개념적 경험 이전의 비언어적 실재’로 보는 시선을 인식‧논리적으로 정립
             하고 있는데, 디그나가(Dignaga, 480~540년경)를 위시하여 체계적으로 발전해 간

             이런 시선의 타당성에도 필자는 회의적이다.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에 관해
             불교인식논리학이 정립하고 있는 관점과 이론에서 일관되게 목격되는 것은 ‘언

             어‧개념‧차이‧구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다.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의
             실재와 ‘언어‧개념‧차이‧분’은 상호부정과 불상응의 관계에 놓여있다는 관

             점이 과연 붓다의 통찰과 정합적인지 묻고 싶다.            22)



               무지와 지혜‧깨달음, ‘무지에의 속박으로 인한 고통’과 ‘지혜‧깨달음으로써
             풀려난 자유‧안락’(해탈‧열반)은 모두 이 ‘언어에 연루된 차이들과의 관계방식’

             에 따라 발생한다. 붓다는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차이들’ 이면이나 너머에 있는




             22)  이에 관한 필자의 소견도 「차이(相)들의 ‘상호 개방’(通)과 ‘상호 수용’(攝) - 『금강삼매경론』과 차이 통섭의 철학:
                원효와 붓다의 대화(Ⅱ)」에 거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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