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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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사유’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이해 사유’와 ‘재인지 사유’를 모두 품은 사유
현상을 ‘마음’이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의 내용은, 이해 사유와 재인지 사
유가 상호적으로 작용하면서 역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이해 사유와는 다른 자리에서 발생하는 재인지 사유는 어떤 경우에도 이해 사
유와 무관할 수 없다. 대상이 된 이해에 대한 그 어떤 대응과 처리도 그 이해에 기
대어 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인지 사유는 이해 사유와 언제나 서로 맞물
려 있다. 재인지 사유는 언제나 이해 사유를 조건으로 삼아 발생하고 작용한다.
‘이해 사유의 의미 규정력’이 없다면 사유의 그릇이 비게 되고, ‘재인지 사유의 이
해 구성력’이 없다면 사유 그릇의 내용물이 썩는다. 이해 사유와 재인지 사유는,
원효의 말을 빌리면, ‘같지 않으면서도 별개의 것이 아닌’(不一而不二) 관계를 맺고
있다. 이해 사유와 재인지 사유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不一不異).
마음은 <이해 사유와 재인지 사유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 관계’로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사유의 장場’>이다.
‘재인지 사유의 창발적 구성력’을 주목하여 그것을 ‘선先이해체계/문법에서
풀려나는 능력’ 및 ‘이해들을 이로운 것으로 수정하거나 수립하는 능력’으로 포
착한 후 그 능력을 의도적으로 계발하여 고도화시켜가는 길을 마련한 것이 붓다
였다. 이해를 조정하고 선택하며 수정하거나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위상을 지닌
다는 점에서, ‘마음의 재인지 사유 면모’는 ‘마음의 이해 사유 면모’보다 상위의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에 맞지 않는 이해‧관점‧견해를 사실에 부합하
는 것으로 바꿈으로써 삶의 근원적 치유와 행복을 구현하려는 ‘이해 수행’(觀, 위
빠사나 행법)도 이 ‘마음의 재인지 사유 면모’가 받쳐주어야 완전해진다. 과거와 현
재를 통틀어 ‘이해 바꾸기의 의미와 필요성 및 방법론’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검증해 온 유일한 사례는 붓다의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붓다의 법설과 수행론은
고스란히 ‘이해 바꾸기의 의미와 필요성 및 방법론에 관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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