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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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새로운 향상의 가능성을 발현시켜 품었다. 언어능력에
수반하여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불변‧동일‧독자의 실체/본질 관념’은 차이들
사이에 분리와 배제의 벽을 세웠지만, 다시 그 장벽을 해체시키고 차이들과 ‘하
나처럼 통하면서 만날 수 있는 인지능력/마음’(一心)을 발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
을 품게 되었다. 원효는 그것을 ‘여래장如來藏으로서의 일심一心’이라 부른다. 그
러기에 ‘불변‧동일‧독자의 실체나 본질은 없다는 이해’(空觀)는 이 가능성을 구
현하는 토대이다. 이 토대를 딛고 서서, <[인간의 지각 경험에서 모든 현상은] 오로지 마
음[에 의한 구성]일 뿐 [마음과 무관한] 독자적 객관대상은 없다>(唯識無境)는 유식唯識의
이해를 사닥다리로 삼아, 또 한 번 도약한다. 원효는 그 도약 방법을 ‘공관空觀을
안은 유식관唯識觀’으로 제시한다. ‘공관空觀을 안은 유식관唯識觀’에 의거하여, ‘모
든 경험현상을 괄호 치고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마음국면/자리’를 확보하고, 그 국
면/자리에서 이해들을 만나 ‘더 좋은 이해로 바꾸어가는 능력’을 확보한다. ‘공관
을 안은 유식관’을 디딤돌 삼아 성취하는 이 능력을 원효는 ‘온전한 이해수행’(正
觀)이라 부른다. <주‧객관의 모든 현상에 ‘빠져들지 않고 그침’(止)>과 <그친 국
면/자리에서 ‘사실대로 이해함’(觀)>을 동시에 펼칠 수 있는 능력이다. 지관쌍운止
觀雙運의 정관正觀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온전한 이해수행’(正觀)은 ‘자기를 이롭게 하는 이해의 수립 및 실
천’(自利行)과 ‘타인들을 이롭게 하는 이해의 수립 및 실천’(利他行)을 하나로 결합시
켜 펼칠 수 있는 실력을 키워가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 구제와 사회 구제가 ‘별개
의 것이 아닌 관계’(不二, 不異)로 맺어지는 지평이 비로소 제대로 꽃을 피우는 단
계이다. 이후에는 모든 차이 현상과 ‘하나처럼 통하면서 만날 수 있는 깨달음’(一
覺)이 뚜렷하게 되고, 마침내 모든 차이들과 ‘하나처럼 통하는/통하게 하는 마
음’(一心)이라 부르는 궁극의 인지능력이 성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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