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5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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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사무원 찬드
라 보스를 만나 자문을
구했다. 다르질링에 가서
티베트 어학자를 만나 공
부하도록 주선했다. 이후
1년 2개월 동안 학교를
다니며 티베트인과 다를
바 없는 회화 능력을 길
렀다. 1899년 1월 붓다가
야를 거쳐 네팔, 히말라
야를 넘어 티베트를 향했
다. 고산병, 맹수와의 조
사진 3. 사카이시의 가와구치 에카이 동상.
우, 신분발각의 위험 등
숱한 어려움을 겪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어려움이 맞닥뜨리거나 결정을 해야 할 때 좌선삼매에 들어가서 생
각하고 결정했다. 어느 사원에서는 자신이 범한 살도음의 대역죄를 진심으
로 참회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한 때 어린아이가 병에 걸려 죽어가
는 상태에서 이를 회복시켜주기도 하여 그 집안의 신세를 지기도 했다. 드
디어 3개월에 걸친 험로의 여행 끝에 최후의 목적지인 라사에 도착했다.
포탈라궁을 지나 티베트 최고의 죠캉 대사원 앞에 섰다. 수학승으로서 세
라 대학에 입학했다. 어릴 때 외가 쪽의 의업에 관한 서적을 익혀둔 덕분
에 병자들을 고쳐 천하의 명의로 이름이 났다. 달라이 라마 법왕에게도 알
려져 초청을 받았다. 이로 인해 박사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인이라고 위장한 것이 발각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19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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