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4 - 고경 - 2021년 9월호 Vol.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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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른주에 있는 유서 깊은 뷔르츠부르크Würzburg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
였다. 그는 1924년 9월에 대학을 졸업하였고 다음 해 한스 마이어Hans
Meyer 교수로부터 「불교순전철학」이라는 제목의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 한다. 연도를 따져볼 때 당시 독일 대학의 학제나 학부 및 대학원의 재
학 기간, 박사학위를 정식으로 수여했는지의 여부 등 몇 가지 의문이 들지
만, 독일 유학을 마친 그는 1925년 9월 9일 금의환향했다.
불교 형이상학을 의미하는 그의 논문 〈불교순전철학〉은 《불교》 잡지에
내용이 소개되었는데, 전통적 방식을 차용하여 서분(서론), 정종분(본론),
유통분(결론)으로 글을 구성했다. 서분은 1절 역사적 개념과 불교순전철학,
2절 관념, 3절 논리(사색의 방식)이고, 정종분은 1장 붓다, 2장 다르마로 편
성되어 있다. 백성욱은 이 글에서 유럽의 불교학 연구 성과와 함께 존재론,
인식론, 논리학 등 서양 철학의 개념 틀을 활용하고 있다. 또 국내 독자들
을 위해 범어를 한국어 발음으로 일일이 표기했다.
1928년 4월에는 불교전수학교에서 강의했고 7월부터는 불교사 논설부에
서도 근무했다. 이후 1929년 1월에 열린 전국 승려대회에서 종헌과 종법을
제정할 때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다 1930년 5월 금강산에 있는 지
장암 등에서 대중을 모아 본격적으로 수행을 시작했는데 낮에는 농사를
짓는 등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는 결사 형태의 수행공동체를 꾸렸다. 이
공동체의 명칭은 선불장選佛場이라고 했는데, 보통 지장암에는 30명, 안양
암에는 15명 정도가 모여 기도와 염불, 간경과 참선을 시간을 정하여 행했
다고 한다. 특히 『화엄경』의 독송을 권장했고 ‘대방광불화엄경’ 일곱 자를
염불처럼 염송하게 했다.
이러한 금강산에서의 활동은 그에게 최초의 유럽 유학승이라는 타이틀
에 덧붙여 수행승의 면모를 각인시켜주었다. 하지만 1938년 경찰이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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