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1 - 고경 - 2021년 9월호 Vol.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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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구하고, 부자유스럽지만 자유를 희망하며, 항상恒常 되지 않지만 영
원히 항상恒常 되기를 희구한다.” 인순은 종교란 결국 불평등하고 부자유
스럽고 항상 되지 못하게 불안정한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평등과
자유와 ‘항상됨’을 지향하는 의욕임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종
교의 역할과 가치 역시 불평등 속에서 평등을 지향하고, 부자유 속에서 자
유를 바라며, 항상恒常되지 못한 불안정 속에서 항상恒常된 안정을 지향하
는 데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만약 종교가 이를 지향하지 않고 내세나 천
당이라는 명목으로 현실의 불평등과 부자유, 불안정을 묵인한다면, 이것
은 종교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산속 깊이 들어가 ‘현실
을 나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 현실 속에서 인간들이 겪는
모든 부조리를 함께 겪으며 인간의 바람, 의욕을 표현하고 지향해가는 것
이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 된다. 인순이 ‘산중의 전통 불교’가 아니라 ‘인간
불교’를 지향하게 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역할 – ‘자기 강화’와 ‘자기 정화’
인순은 종교의 가치를 두 가지 측면으로 보았다. 첫째는 자신을 강화하
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를 정화하는 것이다. 자신을 강화하는 것 외에 자
기의 정화, 자기 극복의 다른 측면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
은 종교를 믿으면 자기 마음이 편안하게 위로가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자
아도취에 불과하고, 심지어 악의惡意로 보자면 종교를 아편으로 삼은 것이
다.” 종교가 아편이라면 이것은 종교가 하나의 범죄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인순은 ‘현실 감각과 현실 변혁에의 의지가 없이 그저 현재에 안주하게
하고 자기를 강화하는 것에 그치는 종교’를 승인하지 않았다. 자기 정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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