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고경 - 2021년 9월호 Vol.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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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때, 산을 유람하며 도를 찾았다.” 라고 스스로 기술하는 바와 같이
어려서 출가했으며, 여러 곳을 참방하여 도를 물었다고 한다. 특히 신회는
5)
“열반본적涅槃本寂의 뜻을 물었으나, 모두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고
기술하고 있다.
후에 옥천사玉泉寺의 신수神秀를 찾아가 그의 문하에서 3년을 시봉했으
며, 신수가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청으로 제도帝都로 간 이후에 조계曹溪의
혜능慧能 문하로 들어갔는데, 이때 신회는 13세 혹은 14세의 어린 나이였
다. 혜능과 신회의 첫 만남에서의 대화는 여러 자료에서 조금씩 다르게 묘
사하고 있으며, 후에 이를 근거로 신회를 ‘지해종도知解宗徒’로 평가하기도
한다.
혜능의 문하에서 몇 년을 수학한 이후, “신회는 북으로 유행하여 견문을
넓혔으며, 서경西京에서 계戒를 받았다.” 라고 하는데, 이로부터 구족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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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기 위해 북상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서경은 장안長安으로, 이 시기는
장안뿐만 아니라 동경東京인 낙양洛陽도 모두 신수의 제자인 보적을 중심
으로 한 북종이 장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신회는 이 시기에 북종의 사상
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 이후 경룡景龍 연간
(707-709)에 신회는 다시 혜능 문하로 돌아왔다. 이로부터 혜능에게 인가를
4) 胡適校定, 『新校定的敦煌寫本神會和尙遺著兩種』(補遺編25, 167a), “在幼稚科, 遊山訪道.”
5) 앞의 책. “問以涅槃本寂之義, 皆久而不對.”
6) [唐]宗密撰, 『圓覺經大疏釋義鈔』卷3(卍續藏9, 532b), “神會北遊, 廣其聞見, 於西京受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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