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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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바로 휘리릭 날아가 버렸습니다. 딱
따구리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아쉽게
끝이 났습니다.
오늘 왕건길 대곡지를 조금 지나서 생
애 두 번째로 딱따구리를 만났습니다.
검은색 바탕에 흰색 줄무늬가 있어서 금
방 눈에 띄었습니다. 역시 죽은 나뭇가지
사진 1. 내 생애 두 번째 딱따구리.
구멍을 부리로 쪼고 들락거립니다. 사람
이 제법 다니는 길가인데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먹이를 사냥합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딱따구리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꼬리 깃을
나무에 바짝 붙이고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 나무를 꽉 잡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딱따구리는 단순한 새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딱따
구리’ 하면 곧장 만공滿空스님(1871-1946)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
말, 낙선재에서 상궁과 나인들이 수덕사에 와서 만공스님에게 법문을 청
했습니다. 만공스님은 후일 수덕사의 제3대 방장이 되는 사미승 진성(원담
스님, 1926-2008)을 불러 “거 딱따구리 노래 한 번 불러 보아라.”고 말합니
다. 어린 사미승은 뭣도 모르고 신이 나서 노래합니다.
“ 앞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뚫는데
우리 집 저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어…”
이 노래는 오늘날 <정선 아리랑>의 한 구절입니다만, 상스러운 가사입니
다. 대궐에서 나온 상궁과 나인들이 야한 노래를 듣고 어쩔 줄을 모릅니
다. 그때 만공스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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