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2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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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지탱하는 전통사상은 그대로 고수하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것은 중
국의 전통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정신에 해당한다.
이후의 5·4운동 시기에 이르러서는 서양과 동양문화가 물과 불처럼 근
본적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공자가 제창한 유학을 타도하자[打
倒孔家店].”는 구호가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되었고, 진독수陳獨秀(1879-1942),
호적胡適(1891-1962) 등은 전통, 즉 낡은 유학의 도덕에 대한 철저한 타도와
사회의 전반적인 서구화를 주장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사상계는 전통문화
의 근본적인 단절을 주장하는 진보파(서화파)와 전통문화의 옹호를 주장하
는 보수파(국수파)로 첨예하게 나누어지게 된다. 진보파는 초기 마르크스주
의자인 진독수陳獨秀, 이대조李大釗, 전반서화파인 호적胡適, 과학파인 정
문강丁文江, 그 외 자유주의, 무정부주의의 인물이 해당되고, 보수파는 강
유위康有爲, 엄복嚴復 등의 복고주의파와 두아천杜亞泉, 양계초梁啓超, 양수
명梁潄溟, 장군매張君勱 등의 동방문화파가 해당된다.
유식·화엄불교의 사회정치적 실천
담사동은 청말 정치가·사상가로서, 자는 복생復生이고, 호는 장비壯飛,
호북성에서 출생하였다. 청일전쟁 후 새로운 학문을 제창하고, 강유위의
영향을 받아 양계초와 함께 정치개혁을 주장하였다. 그는 1897년 대표적
인 철학서인 『인학仁學』을 저술하여 정치비판 및 사회혁명의 학문적 근거를
삼았는데, 이 책은 중체서용의 정신이 잘 드러난 것이었다. 이후 그는 호남
성에서 발행된 최초의 신문인 『상학신보湘學新報』의 편집장이 되었고, 또
근대화 운동 촉진을 위해 ‘남학회南學會’를 조직하였다. 1898년 입헌군주제
를 주창한 ‘보국회保國會’의 한 사람으로서 무술변법혁명에 참가하고 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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