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1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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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고, 나쁜 행위를 하면 나쁜 과보[惡果]를 받기 때문이다.
               욕망이 상대적으로 선이나 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의도도 상대적으로
             선이나 악이 된다. 그래서 까르만은 상대적으로 선이나 악이 된다. 좋은 업

             [kusala, 善業]은 좋은 결과를 낳고, 나쁜 업[akusala, 惡業]은 나쁜 결과를 낳

             는다. ‘갈애’, ‘의도’, ‘업’은 선이든 악이든 여하튼 그 결과로써 어떤 힘, 즉
             좋은 방향 혹은 나쁜 방향으로 지속하려는 힘을 갖고 있다. 선이든 악이든
             업은 상대적이며, 윤회의 순환 속에 있다. 그러나 아라한阿羅漢은 비록 행

             동하지만 업을 쌓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잘못된 자아 관념으로부터

             벗어났으며, 윤회와 재생을 가져오는 ‘갈애’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났기 때
             문이다. 그에게는 다시 태어남[再生]이 없다.
               모든 의도적 행위는 그 효과나 결과를 낳는다. 좋은 행위는 좋은 결과를

             낳고 나쁜 행위는 나쁜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행위를 심판하는

             자리에 앉은 권력이나 심판자가 정하는 ‘정의’나 ‘상벌’이 아니다. 반면 이
             것은 법칙 자체의 성질에 스스로 좌우되는 것이다.
               한 존재는 단지 정신적·육체적인 힘이나 에너지의 결합에 불과하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육체적인 신체가 그 활동을 모두 정지한

             것을 뜻한다. 이러한 모든 정신적·육체적인 힘과 에너지는 육체적 활동
             의 중지와 함께 모두 멈추는 것인가? 불교에서는 아니라고 말한다. 의지,
             의도, 욕망, 존재하고 윤회하고 더욱더 많아지려는 욕망은 모든 생명체와

             모든 존재를 움직이고, 전 세계조차 움직이는 엄청난 힘이다. 이것이 세상

             에서 가장 큰 힘이고 가장 큰 에너지이다. 불교에 의하면, 이 힘은 죽음인
             육체의 기능 정지와 함께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자신을 나타내
             어 지속되며, 재생再生이라고 부르는 윤회를 낳는다.

               이처럼 초기불교에서 업설을 강조하는 까닭은 죽어서 천상(deva)에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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