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7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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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과 발행은 처음에 찬불가의 작가로 유명한 조학유가 담당하였고, 이
             후 송종헌, 박한영, 김경주 등이 잡지를 펴냈다.
               1930년 5월에는 김상호, 김법린, 이용조, 조학유 등이 사찰령 체제의 극

             복과 불교 자주화를 위해 비밀결사인 만당卍黨을 결성했다. 이어 몇몇 동

             지들을 더 규합하고 중앙불전의 학생들도 영입하였는데 강유문도 여기에
             참여했으며, 만당의 당수로는 한용운이 추대되었다. 이처럼 강유문은 활
             발한 대외 활동을 벌였는데, 총독부의 사찰령 자체를 비판하고 불교계의

             혁신과 자율적 종권의 달성을 부르짖은 조선불교청년총동맹의 준비위원

             에도 이름을 올렸다.
               1931년에는 일본으로 유학 가서 다이쇼(大正) 대학 사학과에 입학했고,
             청년총동맹 도쿄 동맹의 문교부장 및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이 시기에 중

             앙불전의 1회 졸업생들이 주축이 된 재일 유학생 잡지 《금강저金剛杵》 19호

             와 21호의 편집 및 발행인도 겸했다. 《금강저》는 재일불교청년회의 기관지
             로 1924년 5월에 창간되었는데, 건전한 학풍의 진작을 통해 이상적인 새
             조선불교를 건설하는 것을 발간 목적으로 하였고, 학술논단, 교계 단편,

             시, 수필 등이 실렸다.

               귀국 후 그는 1936년 7월에 창간된 월간 《경북불교》의 편집인과 발행인
             으로도 활동했다. 《경북불교》는 1941년 7월의 48호까지 나왔는데, 고운
             사, 기림사, 김룡사, 동화사, 은해사의 5개 본사가 중심이 된 경북불교협

             회에서 펴냈다. 여기에는 경북 불교계의 동향과 사찰별 활동은 물론 대처

             식육론, 심전개발운동 등 눈여겨볼 만한 주제의 글들이 실려 있다. 강유문
             은 1937년 중반부터 모교인 중앙불전의 강사를 맡으면서 1937년 10월 제
             13호부터는 김해윤이 발행 책임을 이어받았다.

               이 무렵 강유문은 자신의 출가 사찰인 고운사가 포함된 『경북오본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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