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9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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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으로 묘사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그중 하나는 식민지
             로 전락하기 직전인 19세기 불교에 대한 암울한 기억이 작동했기 때문이
             다. 다만 강유문도 일부 승려들의 노력에 의해 수행 전통이 이어진 점과 백

             파긍선, 초의의순 등에 의해 오랜 기간 선 논쟁이 활발히 펼쳐진 사실에 주

             목하며 일정한 평가를 내렸다.
               이어서 그는 관리서 시대, 원종圓宗 종무원 시대, 연합사무소 시대, 교무
             원 시대, 종회 시대로 나누어 20세기 초기의 굵직한 사건과 현황을 정리했

             다, 일본불교의 조선 진출 양상, 1899년에 서울 동대문 밖에 세워진 원흥

             사元興寺, 불교 관리기구인 사사관리서寺社管理署, 근대기 최초의 종단인 원
             종 등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였다. 대한제국이 불교를 관할하기 위해 만든
             사사관리서는 1902년에 원흥사에 두었고, 이때 원흥사를 대법산으로 하여

             전국 16개 중법산 체제를 가동했으며, 대한제국 사찰령이 시행되었다.

             1908년부터는 원종 종무원 시대로서 1910년 원종의 종정 이회광李晦光과
             일본 조동종曹洞宗과의 비밀맹약 체결, 그에 따른 국내의 반발 움직임과 임
             제종臨濟宗 건립 운동을 다루었다. 이어 1911년부터는 30본산 연합사무소

             시대로서 총독부의 사찰령 시행과 30본산 본말사 체제의 성립, 본산 주지

             들의 전횡 문제 등을 언급했다.
               1922년 이후 교무원 시대는 청년 승려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총무원
             과 총독부의 인가를 받은 본산 주지 중심의 교무원이 대립하다가 결국 교

             무원으로 통합된 시기를 다루었다. 1929년 이후 이 글을 쓴 1932년까지는

             종회 시대로서 1929년의 전국 승려대회에서 종헌을 제정하고 중앙의 통일
             기구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펼쳐진 때였다. 강유문은 글의 결론
             을 맺으면서 불교계가 타성적 수난 시대를 지나 청년 승려를 중심으로 대

             중적 정의를 짊어지고 종정宗政의 실권을 갖게 되어 발전의 수레바퀴를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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