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8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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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요慶北五本山古今紀要』(1937년)
를 펴내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고운사는 681년 의상이 ‘고운사高
雲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가
이곳과 인연이 있는 최치원의
자字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개
칭했다고 한다. 강유문은 1930년
대에 「최근 백년간 조선불교 개
관」, 「조선불교는 어디로」, 「신돈
고辛旽考」 등 한국불교의 역사, 현
재와 미래 등을 고민하는 글들을
불교계 잡지에 게재했다. 또 「조
사진 1. 강유문의 「최근 백년간 조선불교 개관」
(『불교』 제100호). 선불교연표」도 작성했고 일본 유
학승답게 「메이지 초기의 일본불교-폐불훼석廢佛毁釋과 승려의 각성」이라
는 글도 기고하였다. 1938년에는 그의 대표 저작이자 불교 대중화와 사회
화를 위한 포석으로 『포교법 개설』이 출판되었다.
『불교』 잡지 제100호에 실린 강유문의 「최근 백년간 조선불교 개관」은
1830년대부터 1930년대 초까지 약 100년간의 최근세 불교사의 흐름을
되짚어 본 것이다. 그는 불교 정책의 변화, 기관 설립 등을 기준으로 하
여 6시대로 시기를 구분하였다. 우선 1830년부터 70년간은 조선의 배불정
책의 연장선에서 놓인 ‘타성적 수난 시대’라고 규정하였다. 그가 근거로 든
것은 승려의 도성 출입 금지 조치, 승려 인권의 문제 및 잡역과 공납의 폐
해 등이었고, 혼란한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사찰은 산간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했다고 보았다. 이처럼 근대기에 들어 전통의 상을 그려낼 때 과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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