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0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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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수 있겠다는 희망 섞인 기대를 토로했다. 하지만 한국불교의 자주성과
종권을 되찾으려는 종헌 제정 노력은 총독부의 공인을 받지 못하고 끝내
물거품이 되었다.
다음으로는 그의 주저인 『포교법 개설』에 대해 소개한다. 이 책은 1938년
2월 1일 서울의 해동역경원에서 신연활자본으로 간행되었는데, 해동역경
원은 선학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표지의 제명은 한용운이
썼으며, 강유문의 서문은 1938년 1월 7일 백악산 밑 구홀방장에서 집필되었
다. 그는 최근에 들어 포교법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고 하면서, 1937년 여름부터 다음 해 1월까지 일본 책인 『일반교화법』을 중
심으로 10여 종의 관련 서적을 참고해 원고를 작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부록을 포함해 책의 분량은 99쪽이며 국한문 혼용체로 서술되었다. 목차
를 보면 앞에 서언이 있고 제1편 능화能化는 의의, 수양(소질, 고전, 수양), 기
관, 교의, 제2편 소화所化는 의의, 농촌(농본, 계발), 도시, 개인(개성, 특징, 신
념, 포교), 군중(분류, 심리, 특징, 배경, 지도, 포교), 제3편 방법은 분류, 변론(종류,
교재, 조직, 언어, 태도, 결언), 문서(의의, 종류), 의식, 예술, 사업으로 되어 있다.
부록에서는 강연회의 의의, 종류, 준비, 개회, 폐회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
명하였고, 포교 규칙과 포교 원서가 끝에 부기되었다.
앞의 서언에서는 포교를 ‘가르침[敎]을 베푸는[宣布] 것’으로 정의하고 기
독교의 전도傳道에 비유하였다. 그는 부처님이 정각을 얻은 후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사성제四聖諦를 설한 것을 포교의 시초라고 보았고, 이때
부처님은 포교의 주체, 비구는 포교의 대상, 사성제는 포교의 내용인 교의,
그리고 교의를 전달하는 것을 포교의 방법이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포교
는 “대중의 도덕적 향상을 목적으로 하고 사상을 선도하며 사회를 개선하
는 일반 교화이면서 또한 불교의 독자적 교화”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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