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고경 - 2022년 1월호 Vol.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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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의식절차가 망라되어 있
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
대에 부응하는 불교 근대화
의 탐색 노력이 묻어나 있
다. 또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본문을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한문과 한
사진3. 안진호와 최취허가 공동으로 편찬한 불교의식집 글로 기재했다.
『불자필람』.
안진호는 권상로가 발행
하던 《불교》 잡지에 1925년 1월부터 1927년 2월까지 22회에 걸쳐 〈일호일
언一號一言〉이라는 고정란을 맡아 소백두타小白頭陀라는 필명으로 연재했
다. 그중에는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 ‘신라 때 불가사리’ 등 눈길을 끄는
제목도 보이고 자신이 경험한 일본 시찰 내용, 출신 사찰인 ‘용문사의 신
비’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 1926년 11월부터 1928년 7월까지 같은 《불
교》지에 만오생晩悟生이라는 필명으로 〈양주 각사各寺 순례기〉를 게재했
다. 이는 그가 『봉선본말사지』를 편찬할 때 양주의 여러 사찰을 답사했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한국불교의 오랜 역사와 고유한 문화를 오롯이 담아낸 사지와 의례서
편찬에서 안진호의 역할은 적지 않았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상황
에서 강사와 포교사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강학 전통의 계승과 불교의 저
변 확대에도 이바지했다. 사찰의 연혁과 의례 문화를 중심으로 불교 기
록유산을 집성한 불교사학자로서, 그리고 많은 불서를 번역하고 간행한
역경사업과 불교 대중화의 기수로서 그의 업적과 위상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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