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22년 1월호 Vol.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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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울 총무원에서
는 승려 교육을 목적으
로 종립 동국대에 입학
시키기 위해 종비생을
선발하였는데, 종비생
1기에 법주사 월탄스님
등이 있었다. 종비생
사진 2. 탄허스님.
스님들을 비롯하여 전
국 강원에서 오대산 정화를 지원하려 모였는데, 젊은 고우스님은 용주사
강원에서 다섯 명을 인솔하여 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정화하면 대처승을 절 밖으로 내쫓는 것이니 분
위기는 싸움터 같았지만, 탄허스님은 대강백답게 정화의 와중에 10일 동
안 『장자』 「재물론」 특강을 하셨다. 정화를 도우려 전국에서 온 강원 학인
들은 탄허스님 강의에 관심이 높았고 좋아했다. 불과 열흘 밖에 안 되는 강
의였지만, 책을 구하기 어려웠던 그 시절, 탄허스님은 칠판에 『장자』 「재물
론」을 한 구절 쓰시고 강의하고 지우고 다시 쓰고 하며, 그것을 다 외워 강의
를 하셨다. 글씨도 명필에 워낙 박학다식하고 설법도 유창하여 공부 열기가
대단했다. 어떤 스님이 “어쩌면 그렇게 머리가 좋으시냐?”고 탄허스님께 물
으니. 스님 말씀이 “어떤 글을 보더라도 300번은 봐야 한다.”고 답하셨다.
탄허스님 공부하는 방식이 그러셨다.
그 당시 고우스님이 놀랐던 일화가 있다. 월정사 산내 암자 육수암 비구
니 스님도 그 강석 맨 뒤에 앉아서 강의를 들었는데 「재물론」을 다 외우고
있었다. 탄허스님이 칠판에 다다닥 쓰면 동시에 그 비구니 스님이 똑같이
읊조리고 있었다. 탄허스님도 대단했지만 그 비구니스님에게 더 놀라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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