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고경 - 2022년 1월호 Vol.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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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서의  배움은  고
                                                        우스님을  선에  발
                                                        심케 하였다. 스님

                                                        께서 늘 “내가 이렇

                                                        게라도  경전과  조
                                                        사어록을  보는  것
                                                        이  다  혼해스님의

          사진 4. 상주 남장사. 혼해 스님께 강원 사교과정을 공부한 도량이다.       영향이다. 특히 혼

                                                        해스님의  『금강경』
          강은 너무나 좋았다. 선에 눈을 뜨게 해주셨다. 참선한 사람과 안 한 사람
          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혼해스님은 오랫동안 경전을 공부하셨고, 또 참선도 해서 체험도 깊으

          니 교와 선을 두루 한 그런 깊이가 나왔다. 상주 남장사 강원에서 혼해스
          님께 그렇게 독강으로 사교를 배울 때 아랫반에 지금 공주 학림사 대원스
          님과 구미 금강사 정우스님이 후배로 들어와서 사집을 보았다.

           그런데 이 혼해스님이 참 재미있는 분이었다. 절에 들어오는 사탕이나

          떡 같은 것을 말려 차곡차곡 모아서 고우스님에게 주소를 주면서 부치라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스님 나이 70세에 애를 낳았는데 그 집으로 보
          낸 것이었다. 당시에는 참 이해하기가 어려운 행이었다.

           혼해스님은 6·25 전쟁 중에 함양 읍내 작은 사찰로 피난 갔는데, 절 공

          양주가 전라도에서 피난 온 20대 여인이었다. 본래 호남 갑부집 딸로 동경
          제대를 나와 교감을 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는데, 남편이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경찰에 잡히자 시어머니와 아들을 데리고 함양 절로

          피신해 온 것이었다. 그런 공양주와 인연이 되어 혼해스님은 칠십에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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