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6 - 고경 - 2022년 2월호 Vol. 106
P. 126
아암의 성품이 교만하게 보일까 염려하여 걱정하는 시도 지어 보냈다. 이
밖에 다산은 아암에게 차를 빌기도 하고 서로 보은산방의 풍광에 대해 연
구聯句를 읊기도 했으며, 술 마시며 시를 읊조리기도 했다. 그는 35세 때부
터 시주詩酒를 즐기다가 1811년 가을, 병을 얻어 두륜산頭輪山 북암北庵에서
입적하였다.
『대둔사지』 편찬에 참여한 인물들
아암의 제자는 수룡색성袖龍賾性·기어자홍騎魚慈弘·철경응언掣鯨應彦·
침교법훈枕蛟法訓 등이 있는데, 수룡색성과 기어자홍이 『대둔사지』 편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수룡색성은 해남 색금현塞琴縣 사람으로 현해모윤懸
解慕閏에게 출가했지만, 내외전을 두루 섭렵하고 아암의 문하에서 수행했
다. 정약용 또한 수룡과는 막역한 사이로 수룡을 아암의 많은 제자 가운데
가장 기걸奇傑하다고 했으며, 『화엄경』의 교리를 터득하고 두보杜甫의 시까
지 배운다고 칭송했다. 더욱이 차도 잘 만들어서 평상시 아암의 심부름으
로 차와 서신을 다산에게 전해준 듯하다.
기어자홍은 그 생몰년과 행적이 자세하지 않다. 다만 『다산시문집』에 기
어에 대한 글이 단편적으로 실려 있을 뿐이다. 아암이 입적한 1811년 9월
다산이 지은 아암혜장의 제문祭文에 의하면 기어자홍에게 “곡하며 아암의
영전에 산과山果와 술 한 사발을 올리게 했다.”고 한다. 또한 수정사水精
寺에 살았던 자홍이 능주綾州에 밥을 구하러 왔기에 “군자는 도를 걱정하지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다.” 하여 그 수행 가운데 빈곤함을 걱정하지 말라고
경책했다.
정약용이 아암 입적 후 그 제자들에게 보인 이러한 면모는 단순한 교유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