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고경 - 2022년 2월호 Vol.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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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묘관음사 결재대중들. 향곡스님(첫줄 중앙), 혜암스님(첫줄 우측에서 2번째),
진제스님(첫줄 맨 좌측), 고우스님(셋째 줄 좌측에서 두 번째).
에서 함께 정진하던 도반 성철스님과 서로 공부를 탁마하며 향상일로로 가
게 된다.
그런데, 1949년이 되자 백두대간의 중심에 있는 희양산 봉암사에도 빨
치산이 자주 출몰하게 된다. 성철, 향곡스님은 전쟁의 불운한 기운을 느끼
고 남쪽으로 피난처를 알아보고자 기장 묘관음사로 오게 된다. 묘관음사
에서도 향곡, 성철스님은 치열한 정진과 탁마를 이어갔다. 묘관음사에는
지금도 선방 옆에 탁마정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두 선지식은 법담을 나누
다 바로 답하지 못하면 멱살을 움켜잡고는 우물에 집어넣거나 절 옆 임랑
해변으로 끌고 가서 바닷물에 밀어넣을 정도로 치열하게 탁마하였다.
묘관음사는 이렇듯 향곡스님이 주석하고 성철스님이 와서 정진하면서
도량에 정진의 기운이 활짝 열렸다. 이후 전쟁이 터지면서 남쪽으로 피난
온 선승들은 묘관음사에서 한 철씩 정진하여 현대 한국불교에 더 유명한
수행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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