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고경 - 2022년 2월호 Vol.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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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욕심도 없고 의도도 없는 순수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의식의 상태이자 긴장하지 않
는 자연스러운 상태입니다.
9세기의 유명한 선승 의현(?∼867)은 “한 개 마음
5)
이 없다면 어디서든지 모두 해탈이다.” 라고 말했
습니다. 사람이 무심할 수 있다면 어디에 있든지
해탈한 상태라는 말은 그만큼 무심하기 어렵다는
뜻도 있는 줄 압니다.
사진 5. 하쿠인 에카쿠
(白隱慧鶴禪師, 1685~1768).
18세기 일본의 하쿠인(1686~1763)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수천 봉우리에 비 걷히니 영롱히 이슬 빛나네.
보라, 두 눈에 비치는 저 풍경을
말 없는 곳에 근심도 없도다.” 6)
우리가 언어를 갖고 있는 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부터는 소외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언어의 의미 체계 너머에 있는 것을 직접 접촉할 방법이 없
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숙명입니다.
우리가 오직 두 눈에 비치는 풍경을 아무런 언어도 없이 바라볼 수만 있
다면 모든 환상이 사라집니다. 거짓된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마음에 걸리
는 것 없이, 무심하게, 어떤 언어도 없이 ‘풍경 자체’를 경험하는 것, 이것
5) 『臨濟錄』, “一心旣無, 隨處解脫.”
6) 白隠, 『槐安國語』, “千峰雨霽露光冷 君看双眼色 不語似無憂.” 上句는 大燈國師の漢詩이며 下
句는 白隠禪師가 덧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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