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고경 - 2022년 2월호 Vol. 106
P. 88
람들도 있다. 이 성들은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壬辰倭亂 동안 왜적倭
敵들에게 쑥대밭이 되도록 당한 다음에 정신을 차려 숙종肅宗(1095~1105) 때
축조되었다.
고려 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으로 국가권력을 손아귀에 쥔 이성계李成桂
(1392~1398)는 우왕禑王(1374~1388)과 창왕昌王(1388~1389)을 모두 편조遍
照화상 신돈辛旽(?~1371)이 낳은 아들이라고 하며 죽이고 공양왕恭讓王
(1389~1392)을 옹위했다. 이른바 ‘가짜를 없애고 진짜를 세운다’고 하는 ‘폐
가입진廢假立眞’의 기치를 들고 나와 백성들을 속이고 결국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웠다. 자연히 조선왕조는 초장부
터 왕자의 난이니 계유정난癸酉靖難이니 하며 왕실 내의 살육과 충신들을
도륙하는 것을 일삼다가 다시 부패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나라를 농단하는 세력들을 척결해야 한다며
일어선 천하의 선비들을 이 땅에서 몰살시킨 사화士禍를 거듭하다가 결국
에는 나라 일을 해야 할 인간들이 동인東人이니 서인西人이니 하면서 패를
갈라 권력다툼을 하는 사이에 나라는 피폐해졌고, 급기야 일찍부터 조선
정벌의 야욕을 불태우던 왜적들이 쳐들어왔다.
지금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 같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천변만화하는
풍광과 운치를 즐기며 새재로 관광을 다니지만, 그 당시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간 이 땅의 우리 선조들을 생각하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부르며 새 나라
를 만들었다는 왕들은 도대체 그 동안 무엇을 했으며, 높은 자리와 나라의
땅을 차지한 관리들은 무엇을 했는지 지금도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또 그런 어리석음과 잘못을 저
지르게 된다. 불교에서는 세상에 선과 악은 없다고 하며, 옳고 그름을 판
단하지 않는 것이 불교의 이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개인의 주관적
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