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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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에 뜻을 둔다. 둘이 서로를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평등이다.”는 논의가 이
러한 입장에서 가능해진다. 장태염이 보
기에 문명과 야만에는 문화의 우열론이
없고 인간의 생활 습속의 차이가 나란하
지 않은[不齊] 그대로 병존하는 것이 『제
물론석』에서 말하는 ‘평등’ 개념의 본지
이다.
그는 근대 서양 제국주의와 같이 문명
사진 3. 장병린의 주저 『제물론석齊物論釋』.
의 이름으로 야만을 구제한다는 것은 실
은 인간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 지나
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장태염은 성인과 지혜, 문화를 숭상하는 것은
오히려 큰 도둑을 돕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성인과 지혜, 문화를 숭
상하지 않고 세속법의 차이를 인정하고 문명과 야만의 동등한 가치를 인
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장자가 말하는 제물, 참된 의미의 평등이라고 본
다. 문명의 이름으로 야만을 무시하는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장태
염이 ‘제물’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상아喪我’, 자아의 극복과 혁명의 도덕
『장자』 「제물론」 첫머리에 남곽자기라는 인물이 제자에게 “나는 나를 잊
었다[吾喪我].”라고 말하는 구절이 나온다.
남곽자기가 팔뚝을 안석에 기대고 앉아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길게 한숨
을 쉬는데, 멍하니 몸이 해체된 듯이 자기 짝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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