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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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의 사슴 키우는 울타리


           새들은 노래 부르고, 나무들은 수많은 새싹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햇살

          은 숲 사이로 스며들어 이끼 위에 떨어집니다. 1300년 전에 이런 농밀한

          풍경을 놓치지 않고 노래한 사람이 있습니다.


              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어디선가 두런대는 소리만 들리네

              석양빛은 숲 속 깊숙이 들어와
              다시금 푸른 이끼 위에 비치네        1)



           시불詩佛이라 불리던 당나라 시인 왕유(699~761)의 시, 〈녹채鹿柴〉입니

          다. 녹채란 사슴을 키우는 울타리를 말합니다. 녹야원鹿野苑입니다. 그가
          만년에 녹채라는 골짜기에서 살면서 석양의 풍광을 노래한 시인데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습니다.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깊은 산 속에 석양빛이 스며들어 푸른 이끼 위에

          비치는 광경이 그림처럼 선명합니다.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합니
          다. 이런 조용한 풍경은 서둘러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
          움입니다.

           왕유가 묘사하는 공산空山, 석양빛[返景], 푸른 이끼[靑苔]는 절묘합니다. 그

          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고개를 숙여 이끼를 들여다봅니다. 푸른 이끼는
          왕유가 깨달은 인생의 은유입니다. 그는 자연 속 이끼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




          1) 『唐詩選』 卷六, 『王右丞文集』 卷四,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靑苔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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