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1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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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봉암사 본전 구역 전경.
히 초빙하였다. 대사도 이를 거절하지 못하고 왕경으로 가 월지궁月池宮에
서 왕과 마주하고 문답을 주고받았는데, 이때 마음[心]에 관한 왕의 질문에
대하여 “연못에 비친 달[水月]이 바로 마음이니 더 드릴 말씀은 없다”고 하
였다.
헌강왕도 이에 계합契合하는 바가 있어 “부처가 연꽃을 들어 뜻을 전한
풍류가 실로 이에 합치하는 것이로다[金仙花目 所傳風流 固協於此].”라며 응답
하였다. 왕의 곡진한 전송을 받으며 봉암사로 돌아왔다. 대사는 882년에
병으로 안락사로 되돌아갔는데,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가부좌跏趺坐를 한
채로 입적하였다. 시호는 지증이고, 부도탑의 탑호는 적조寂照였다. 다비
를 한 후 1년 뒤에 봉암사에서 장사를 지냈다.
신라의 대문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 선생은 왕의 명을 받아 대
사의 문도인 성견性蠲, 민휴敏休, 양부楊孚, 계휘繼徽 화상 등이 정리해 온
행장을 바탕으로 893년경에 탑비의 비문을 지었다. 비문의 말미에 있는
사詞에서, 지증대사의 가르침을 두고 북종선이니 남종선이니 하는 것은 어
리석은 것이라고 쓴 부분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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