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4 - 고경 - 2022년 4월호 Vol.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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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준공된 선학
원은 창설 이후
선풍 진작 운동의
구심점으로 전국
수좌들의 모임을
결성하였다. 이
듬해인 1922년 3
월 30 일에서 4
사진 1. 선원 수좌들이 발행한 잡지 『선원』의 표지 (2호, 4호). 월 1일까지 전국
각지의 참선수좌
35인(송만공, 오성월, 백학명, 이설운, 임석두 외)이 선학원에 모여 선우공제회禪
友共濟會의 결성을 선포하고 취지서를 공포하였다.
선 수행의 가풍을 전국에 확산하고자 하는 선학원의 지향은 일정 정도
성공하여, “1924년경에는 통상회원 203인, 특별회원 162인 합계 365인의
회원이 소속된 수좌 중심 단체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재정적 어려움으
1)
로 수좌들의 ‘공제共濟’는 실현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1924
년 4월에는 선우공제회의 본부가 직지사로 이전하였고, 1926년 5월 1일에
는 선학원이 범어사 포교소로 전환되었다. 이로써 선학원의 제1기 활동은
마무리된다.
이후 4년의 공백기를 거친 선학원이 다시 전국 수좌들의 구심 공간이 된
시기는 1931년으로 이때부터 제2기가 시작된다. 김적음 화상이 선학원을
인수하여 선리참구원으로 개편하고 활동한 시기다. 재건된 선학원에서는
1) 김광식, 「선학원의 설립과 전개」, 『선문화연구』 창간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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