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5 - 고경 - 2022년 4월호 Vol. 108
P. 115

송만공, 이탄옹, 한용운, 유엽, 김남전,
             도진호, 백용성 등이 대중들을 상대로
             강연했으며, 일반 대중들도 남녀선우회

             와 부인선우회를 조직하여 생활 속의 참

             선수행을 실천하였다.
               이러한 선풍 진작 운동이 전국적인 영
             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잡지라는 새로

             운 매체가 필요하였는데, 선학원이 재건
                                                   사진 2.  송만공. 재건된 선학원에서 강연
             된 1931년 10월 6일 드디어 『선원』을 창                 했다.
             간하였다.  『선원』은  선학원의  제2기가
             시작되면서 그 기관지로 발행한 것이다.

             창간호의 서지는 ‘편집 겸 발행인 김적

             음, 인쇄소 신소년사, 발행소 선학원(경
             성부 안국동 40번지)’이다. 이는 2호(1932.2)

             와 3호(1932.8.)에도 동일하다. 4호(1935.10)
             는 3호 간행 이후 약 3년 만에 발행되었

             다. 편집 겸 발행인 김적음, 발행소 조선
             불교중앙선리참구원, 총판매소 조선불교
             선종중앙종무원이다.

                                                   사진 3.  백용성. 송만공 등과 함께 선학
                                                        원의 강연자로 활동했다.
                잡지의 지향과 편제


               『선원』은 선학원의 기관지이니만큼 선학원의 창립 정신을 구현하는 매

             체로 존재하였다. 외래종교, 신흥종교 가릴 것 없이 잡지라는 근대 매체를



                                                                         113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