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고경 - 2022년 5월호 Vol.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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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자신을 벗어나 보는 하루
영산홍 군락지까지
내려갔지만 영산홍은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발아래 금호강은 팔달
교, 매천대교, 금호대
교를 걸치고 유유히 흘
러갑니다. 버드나무의
연두색은 우리들 내부
에서 움트고 그 뒤로 반
투명의 산맥이 있습니
다. 하늘의 높이와 대
지의 숨결 같은 것은 사
람이 감히 잴 수 없는
것들입니다.
사진 5. 와룡산의 호젓한 산길.
돌아오는 길, 호젓한
산길, 우리는 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흙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타박타박 걸
을 때면 우리가 곧 죽을 사람은 아니로구나 생각합니다. 가끔은 한물간 노
인이 아니라 한창 때라는 착각마저 일어납니다. 안경, 임플란트, 각종 보
조장치와 더불어 갖가지 알약의 도움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푹 빠져서 자잘한 근심거리에 매여 있다가 모처럼 자신을 벗
어나 보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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