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고경 - 2022년 5월호 Vol. 109
P. 86

균정의 아들 김우징이 신
                                                  무왕으로 즉위하였고, 장
                                                  보고와 김양 등 신무왕을

                                                  도왔던 세력들은 정치권력

                                                  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신무왕은 즉위한 지 6개월
                                                  도 못 되어 사망하였고, 그

                                                  아들인 김경응金慶應이 즉

                                                  위하여 문성왕이 되었다.
                                                    김부식金富軾(1075~1151)
                                                  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애장왕을 죽이고 왕이 된

                                                  헌덕왕, 희강왕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민애왕, 민
                                                  애왕을 죽이고 왕이 된 신

                                                  무왕이 모두 비운의 황천

                                                  길을 간 것에 대하여 기술
                                                  하면서,  북송北宋의  구양
                                                  수歐陽脩(1007~1073)의  사론
          사진 3.  봉림사 진경대사 보월능공탑. 국립중앙박물관 소재.
                                                  을 빌어 불의한 왕이 어떻

          게 되는지를 후세에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논하였다.
           문성왕은 즉위하자 장보고를 진해장군鎭海將軍으로 봉하고, 예징禮徵을
          상대등上大等에, 의종을 시중에 각각 임명하고, 김양에게 소판蘇判의 관등

          을 주면서 병부령兵部令으로 임명하였다. 그렇지만 이미 강한 군사력을 가



          84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