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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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백련사지』가 찬술된 강진 백련사.
승려가 미천한 계급으로 전락하고, 불교사의 사정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이미 전란으로 소실되어 버린 상황에서 기록의 치명적인 오류는 바로 역
사적 사실로 각인될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찬자들이 대둔
사의 연혁과 지나온 사정을 바로잡기 위해 수집한 자료와 그들이 지닌 고
대사와 불교사에 대한 폭이 넓고 깊은 지식은 단순히 대둔사에 국한된 지
엽적인 차원이 아니었다. 그들은 분명 대둔사의 역사를 통해 잊혀져 가고,
탄압으로 왜곡되어 가는 우리나라 불교사를 온전히 소생시키고자 했던 사
명감 또한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정약용은 권4 『대동선교고』에서 『삼국사기』의 불교기사가 “기록이 모두
어그러져 전부를 믿기 어렵다.”며 불신을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록했
으며, 채영의 『해동불조원류』가 “신라의 명덕名德에 대한 사실이 잘못되어
믿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참고하도록 덧붙여 놓은 것이다.” 정약용은 여
기에 그치지 않고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과 중국의 『불조원류』나 『전등
록』에 입전된 해동 승려의 기록 또한 발췌하여 수록해 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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