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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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이러한 찬술 정신은 단순히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기 위한 것
             만은 아니었다. 당시 그의 우리나라 고대사에 대한 관심은 우리 역사가 중
             국사와 분명히 다른 독자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 것에서 비롯되었고,

             문화를 척도로 하는 화이관華夷觀을 기초로 한 자존의식의 표출이었던 것

             이다. 그의 『대동선교고』 찬술은 이러한 맥락에서 조선의 불교사가 민족사
             를 체계화시키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조선불교의 역사를 주
             체적으로 이해하고 재구성하고자 한 목적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조선후기 대둔사의 위상 조명


               셋째, 대둔사가 조선후기 불교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천명한 것이다. 『대

             둔사지』는 당대사를 중심으로 한 불교사 서술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이후 조

             선후기 대둔사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찬자들은
             권1에서 대둔사를 조선후기 선교禪敎의 종원宗院으로 격상시킨 12종사와 12
             강사의 생애에 대해 비문을 기초로 정리했다. 권3은 조선불교의 중흥조인 서

             산대사의 생애와 입적 후 대둔사로 의발이 옮겨진 경위와 조정으로부터 그

             공적이 인정되어 표충사를 건립하는 시말까지를 정리하기도 했다.
               대둔사는 서산대사가 생전에 해남과 대둔사의 지리적 조건을 중요시하
             고 그의 의발을 보관하게 함으로써 조선후기 대사찰로 성장할 수 있었다.

             더욱이 조정의 사당건립과 추존사업은 청허 문도뿐만 아니라 조선불교계

             의 종원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 것이다. 여
             기에 당시 화엄학을 중심으로 한 걸출한 종사와 강사들을 배출한 것은 대
             둔사를 명실상부하게 조선 제일의 사찰로 탈바꿈시켜 놓았던 것이다.

               『대둔사지』는 이러한 대둔사의 대내외적인 위상을 선양하는 데 훌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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