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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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원효의 『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 1책(사진 5)
과 『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 1책도 금릉각경처에서 판각된 책으로 확인된다.
특히 『유심안락도』는 양문회가 그의 친척인 소소파蘇少坡가 외교관으로 일
본에 부임할 때 난조분유에게서 구한, 중국에서 일실된 정토 관련 10책에
도 포함되어 있던 책이다. 「휘각고일정토십서연기彙刻古逸淨土十書緣起」에
기록이 남아 있다.
이처럼 근대 중국에서 불교 서적이 다시 보급되고 확산된 계기는 양문
회와 같은 재가 거사의 원력이 큰 밑거름이 되었다. 금릉각경처 불서의 교
감에서도 드러났듯이, 고려 재조대장경은 중국의 여느 대장경보다 원문의
정확성을 내재하고 있다. 800여 년 동안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경판이 흩
어지지 않고 해인사 장경판전에 봉안되어 세계적인 기록유산으로 지정되
었다. 한국불교의 저력과 가능성은 이렇게도 입증된다.
다만 고려시대 초조대장경의 완성 이후 동아시아 고승들의 저술인 장
소章疏를 모두 수집하여 교감해서 간행하고자 했던 대각국사 의천
(1055~1101)의 교장敎藏 간행이 후대에도 제대로 이어졌더라면 한국불교의
위대한 사상가인 원효 등의 저술을 타국에서 찾아 헤매는 아쉬움이 덜했
을 것이다. 중국 근대 불교학의 부흥에서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
리가 해야 할 노력이 무엇인지 모색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김영진, 『중국 근대불교학의 탄생』, 부산: 산지니, 2017.
김영진, 「중국 근대 금릉각경처의 각인 사업과 백련암소장 금릉각경처각본 유식문
헌의 성격 고찰」, 『불교학보』 90, 서울: 불교문화연구원,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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