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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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 도량이다. 그러
             나 1950년 전쟁이 터
             져  결사는  중단되고

             말았지만  봉암사의

             결사  정신은  1954년
             승단  정화운동을  거
             쳐 1962년 통합 조계

             종단의  출범으로  이          사진 4.  1966년경 도량을 물색하기 위해 봉암사를 방문한 성철스님(왼
                                        쪽부터 서경수 교수, 성철스님, 숭산스님, 이한상 거사, 박성배 교수).
             어져  지금  대한불교
             조계종의 사상·문화적인 기반이 되었다.



                전쟁으로 결사가 중단된 이후 봉암사



               지금은 봉암사가 대한불교조계종의 유일한 종립선원으로 1년에 단 하루
             산문을 개방하고 364일 산문을 닫고 오로지 참선 수도만 하는 세상에 희

             유한 수좌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결사가 중단된 이후의 봉암

             사는 우리 민족의 운명처럼 위기를 맞았다. 1947년 가을에 시작된 봉암사
             결사는 1949년 동안거를 해제한 뒤인 1950년 봄에 중단되고 말았다. 봉암
             사에 빨치산이 자주 나타나자 결국 국군이 절과 암자의 출입을 금지하는

             소개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유구한 천년 고찰도 시대의 아픔을 비켜가지

             못했던 것이다.
               1950년 6월에 전쟁이 터져 인민군이 내려오자 국군이 남쪽으로 후퇴한
             사이에 만성晩惺스님은 비어 있는 절을 지키기 위해 홀로 봉암사로 가서 여

             러 번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도량을 지켰다. 전쟁이 끝나자 종단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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