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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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로 어수선한 틈을
                                                       타서 경찰 출신의 속
                                                       인이 스스로 머리를

                                                       깎고는 주지 행세를

                                                       하며  700만  평이나
                                                       되는 봉암사 임야를
                                                       팔아먹는 희대의 사

                                                       건이 일어났다. 이에
          사진 5. 김용사 상선원.
                                                       가은 불자들이 봉암
          사를 지키자고 들고 일어나고 휴정休情스님이 앞장서서 노력하여 6년간의
          소송 끝에 팔아먹은 땅을 전부 되찾았다.

           성철스님은 팔공산 성전암에서 10년 동구불출 정진을 마치고 1965년 김

          용사에서 첫 대중설법을 시작한 뒤 사부대중이 모여들자 더 넓은 도량을
          찾던 중 봉암사도 방문하여 살펴보았지만 결국 도반 자운스님의 요청으로
          1967년 해인사로 가게 된다.

            유구한 전통과 결사도량으로서 청정한 기운이 감도는 봉암사가 좋아서

          자주 찾는 수좌들이 많았다. 1969년 여름에 법진스님이 봉암사 백운암에
          서 홀로 정진하고 있었는데, 양식이 떨어져 봉암사 원주스님에게 부탁했
          다. 그런데 봉암사에도 양식이 없다고 주지 않았다. 법진스님이 “어떻게

          큰절에 양식도 없느냐?”고 뭐라 하자, 원주스님이 “차라리 스님이 절을 맡

          아 살림을 사세요.” 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법진스님은 하는 수 없이 양식을 구하러 은사스님이 계시는 서울 대각

          사로 갔다. 대각사에서는 2만 5천 원이라는 큰 돈(지금 기준으로는 3백만 원)
          을 보시해 주었다. 그렇게 탁발을 마친 법진스님이 점촌 버스정류장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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