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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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였는데 마침 김용사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도반들을 만났다. 서
             로 안부를 묻고 하다가 봉암사 이야

             기가 나오자 “차라리 봉암사를 정화

             해서 참선도량으로 하는 게 좋지 않
             겠느냐?” 하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법진스님은 봉암사로 가지

             않고 김용사로 가서 수좌들과 봉암사

             문제를 더 논의하게 되었다. 그때 김
             용사에 모여 봉암사 문제를 일차적으
             로 모여 논의한 수좌들은 법진, 고우,
                                                사진 6.  1969년 봉암사 제2결사에 참여한 무비
             법화, 법연, 천장, 영명스님 등 여섯                   스님.

             비구들이었다.
               당시 김용사에는 성철스님이 불사하여 머무신 상선원上禪院이 있었다.
             정식 선원을 운영한 것은 아니지만 선원에 수좌들이 오가며 자유롭게 정

             진하여 주로 상선원에서 봉암사 정화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때 범

             어사 무비無比 스님도 우연히 점촌정류장에서 수좌들을 만나 봉암사 이야
             기를 듣고는 “나도 동참하겠다”하고 왔고, 정광淨光 스님도 인연이 되어 합
             류하였다. 이렇게 하여 10여 명 수좌들이 봉암사를 다시 참선도량으로 만

             들 계획을 논의하게 되었다. 그때 고우스님은 33세로 가장 나이가 많은 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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