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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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을 수없이 접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성이 무엇인지 모른다. 간단
             치 않은 층층의 번뇌망상이 그것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혹 자기가 불성을 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은 착각일 수

             밖에 없다. 그 생각 자체가 곧 번뇌망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중생은 진여

             불성과 무명의 모순적 공존 그 자체다. 그래서 공평하게 말하자면 불성을
             꽃피워 부처의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절반, 무명의 구름에 갇혀 세세생생
             어두움 속에 살아갈 가능성이 절반이다. 다만 그것은 산술적으로 그렇다

             는 말이지 실제로는 그보다 열악하다. 특별한 경각심이 없이 가만히 놔 둘

             경우 무명의 끝없는 훈습작용으로 인해 번뇌망상의 지분이 자동으로 증가
             해 간다. 그렇게 돼먹은 것이 중생의 살림살이다.
               우리가 매 순간 경각심을 가지고 ‘열심히’ 수행해야 하는 이유다. ‘열심

             히’ 하는 수행이 있어야 층층의 번뇌망상을 해소할 수 있다. 번뇌망상이 해

             소되는 그만큼 불성을 깨울 수 있고, 싹을 틔울 수 있고, 꽃을 피울 수 있
             으며,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수행은 농사를 짓는 일과 같고, 불을 때서 물
             을 끓이는 일과 같다. 농사일을 멈추는 순간 그만큼 곡식의 윤기가 줄고,

             불 때기를 멈추는 순간 그만큼 물이 식는다. 그래서 움직일 때나 가만히 있

             을 때나 공부가 계속돼야(동정일여) 좋다고 한 것이고, 꿈을 꾸면서 공부가
             계속된다면(몽정일여) 더 좋다고 한 것이며, 꿈조차 없는 상태에서도 공부
             가 한결같다면(숙면일여) 더욱더 좋다고 한 것이다.

               원래 번뇌망상과 불성은 서로를 배제하는 관계에 있다. 번뇌망상이 커

             졌다는 것은 그만큼 불성이 암흑에 잠기게 되었다는 말이 되고, 불성이 밝
             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번뇌망상이 소멸했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공부
             가 한결같으려면 진여불성의 햇볕을 가리는 구름장이 사라져야 한다. 또

             반대로 한 찰나라도 공부가 사라졌다면 번뇌의 구름이 권토중래하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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