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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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결사 정신을 되살려 참선 도량으로
                                   하면 좋겠으니 수좌들이 맡게 해달라고 청하
                                   였다. 그러자 녹원스님은 수좌들이 바랑지

                                   고 운수납자로 제방 선원을 다니며 정진하는

                                   데 어떻게 도량을 맡아 운영할 수 있겠느냐
                                   며 완곡하게 거절하였다. 그렇게 하여 첫 만
                                   남에서 수좌들의 뜻은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김용사로 돌아온 수좌들은 다시 어
          사진 2.  봉암사를 수좌 도량으로 배
              려해 준 직지사 녹원스님.
                                   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직지사 녹원스
          님의 마음을 돌려 믿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희양산 산림의 남벌 문제



           그런데 봉암사 백운암에서 정진하던 법진스님과 봉암사를 자주 출입하
          던 법화스님이 가은읍의 신심 있는 불자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 내용인즉

          슨 지금 봉암사에는 주지가 절에 없는데 큰 산판이 벌어져 절 형편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주지가 산판 업자들과 큰 계약을 맺어 봉암사 입구에
          서 오봉정(봉암사 법당에서 계곡을 따라 10여 리 더 들어가면 있는 큰 화전민 마을)까
          지 500정보나 되는 막대한 산림을 베어내고 새로 유실수를 심는 대대적인

          수종 개량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말이 수종

          개량이지 희양산 일대의 850만 평이나 되는 토지에 울창한 소나무를 베어
          내어 팔고는 낙엽송이나 잣나무 같은 유실수를 심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문경시청 공무원들도 관련이 되어 있었다. 당시 정부는 전쟁

          이후 황폐화된 산에 식목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였는데 백두대간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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