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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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에 위치한 희
             양산 일대의 울
             창한  소나무를

             베어내고  생산

             성 있는 나무를
             심는  사업이었
             다.  소나무는

             지금이야  우리
                              사진 3. 희양산 봉암사의 울창한 산림.
             나라를  대표하
             는 나무로 시내 가로수로 심을 정도로 각광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쓸모가
             없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망국지목亡國之木’으로까지 홀대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구실이고 실제로는 그렇게 베어낸 봉암사 소나무들은 가

             까운 가은 은성탄광을 비롯한 탄광의 굉목으로 팔려 나갔다. 봉암사가 있
             는 문경은 남한 최초로 석탄 탄광이 개발된 곳으로 당시에는 60여 개의 탄
             광이 있었으니 굉목 등 목재 수요는 상당하였다. 그러니 봉암사 소나무들

             은 적지 않은 돈이 되었고, 또 오봉정 일대 화전민들은 봉암사 참나무들을

             베어 숯을 구워 팔았기 때문에 그것도 돈이 되었다.
               이렇게 천년고찰 봉암사 산림이 무참히 베어져 나가는 상황에도 주지는
             절에 없었으니 가은 신도들의 원성이 쌓여만 갔고, 김용사 수좌들도 이 문

             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수좌들의 원력과 녹원스님의 결단



               봉암사를 참선 도량으로 만들자는 결의를 한 수좌들은 다시 직지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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