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고경 - 2022년 8월호 Vol.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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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
자는 것이다.
그런데 봉암
사를 명실상부
한 참선 도량으
로 복원하려면 사진 1. 봉암사 제2결사 첫 주지 지유스님(현 범어사 금정총림 방장).
그런 뜻을 가진
주지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제2결사 동참 수좌 중에는 주지하려고 나서
는 이가 없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수좌는 참선 수도가 본분사라는 인
식이 강하여 주지 등 사찰 소임, 즉 사판事判은 기피하는 분위기였다. 더구
나 고우스님을 비롯한 결사 수좌들은 아직 승납이 10년도 되지 않은 젊은
수좌들이었으니 더 그러했다.
그래서 의논한 끝에 선배 수좌를 모시기로 하였다. 먼저 서암스님을 봉
암사로 오시라 하니 어찌된 영문인지 스님은 원적사에 계시면서 한사코 봉
암사로 오시려 하지 않았다. 다음에 모시려 한 분이 범어사 지유스님이었
다. 지금은 범어사 금정총림의 방장이 된 지유스님은 1931년 일본 동경에
서 태어나 해방 직후 귀국하여 범어사 동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참선
수도와 전법 교화에만 전념해 온 선승이었다.
고우스님과는 문경 운달산 금선대에서 서암스님을 모시고 살아 마치 사
형사제처럼 지내고 있었다. 결사 도반 법화스님과는 서울 안국동 선학원
에서 같이 지낸 인연이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고우스님과 법화스님 그리
고 범어사 문중인 무비스님이 나서서 지유스님에게 봉암사 주지를 맡아 봉
암사에서 같이 살자고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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